2018 동행 변론 낭독회 후기 -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 김미리내 (후원회원)
2018-12-11      조회수 133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는...”
겨우 첫 마디를 뗐다. 조명이 나를 향하고, 잠잠히 배경음악이 깔리고.. 
경찰들과 싸우고, 급하게 잡힌 기자회견을 진행해본 터라 나름 뱃심 두둑한 편인데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긴장이 되서 앞이 깜깜해져버렸다. 
그런데 참여자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는 게 전해지며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그들과 호흡하듯 나도 한 문장, 한 문장 조심스레 읽어 내려갔다.

“미리내 샘, 우리 후원의 밤을 하는데 이번 컨셉을 동행과 함께 한 활동가들이, 함께 진행한 사건의 의견서를 낭독하는 식으로 할려고 해요. 미리내 샘. 해주실꺼죠?” 
며칠 전,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1초도 생각지 않고 “좋지요”라고 답했다. 

에이..생각해보니깐 좀 도도하게 거부도 하고, 맛있는 밥 한끼라도 얻어 먹고 승낙했어야 했는데..아쉽 ^^

캠페인이 있는 날이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퇴근 전, 보내주신 의견서를 속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동행의 후원 장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마자 여러 가지 종류의 반찬과 밥, 국이 보이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소담스레 놓여진 떡과 간식, 그리고 활동가들의 사진이 놓여져 있는 게 보였다. 
단체의 실무를 담당하는 활동가라 그런지 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매우 소소해보여 놓치기 쉽지만 저 안에 고스란히 담긴 고민과 수고가..

오시는 분들 식사를 준비하며, 간단히 김밥과 샌드위치가 아니라 뷔페식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반찬 하나, 하나를 조정하고 국의 종류를 결정하는 수고.. 
활동가들이 주인공이 된 사진을 선물처럼 주기 위해 사진을 모아, 한 장 한 장 고르며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출력해 예쁜 틀에 꽂는 그 과정의 수고를..

활동가들이 낭독해 왠지 더 뭉클했던 변론 낭독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민우회의 자랑 ‘시나페’의 공연을 울다 웃으며 듣고, 2부 행사로 이소아 변호사와 권소연 변호사가 자리에 섰다.‘이 자리를 우리 엄마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소아 변호사가 오늘 이 자리의 감사 인사를 하는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가끔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쓰는 일상들을 (엄마이자, 딸로, 그리고 변호사로 사는 삶이 녹아난) 보아와서인지 주책바가지인 나도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이소아변호사가 광주로 내려와 공익변호사 단체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어요” 나와 축하인사를 전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으며,이소아 변호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냥 인사만 나누던 그녀와 함께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던 때.. 

(씀벅씀벅한 말투에 그녀가 실은 무서웠다고 이제서야 살짜쿵 고백을 ^^)


변호사로, 상담지원활동가로 역할을 나누어 지원을 하다 그 사건의 피고인이 국민참여 재판으로 사건을 진행할 것을 재판부에 이야길 했고 그 때부터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성폭력 통념이 강력히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이미 피해자에게 불리한 싸움일 뿐 아니라, 피해자는 배심원들에게 본인이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 것을 막기 위해 각 각 참여 배제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우회에서는 피해자를 지지하고 재판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모니터링단을 모았고 

그 날, 재판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단 5명이 새벽까지 재판의 결과를 기다렸고, 그 자리에 이소아 변호사와 내가 함께 있었다. 
재판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피고인의 무죄. 터덜 터덜 법정에서 나와 내려오는 길.. 

아무도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던 그 때..여전히 울보인 이소아 변호사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내려오던 그 날, 그 새벽의 공기.. 
아마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그녀와 내가 진짜 ‘동료’ 가 된 건..

그런 시간들을 통과해 2018년 11월의 오늘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내내 뭉클한 마음들이 들었다. 
그녀도, 나도, 그리고 권소연 변호사가 결합한 지금의 ‘동행’도 그 때보다 더 단단해졌을꺼라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더 단단하게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동행할 것을 믿는다. 

그리고 10년, 20년 후 동행 후원의 밤에도 그녀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 

그 때도 울보인 이소아 변호사가 울고 있었음 좋겠고^^, 씩씩한 권소연 변호사는 여전히 씩씩했으면 좋겠고, 그 옆에 많은 후배 변호사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나는 그 옆에서 그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박수를 쳐주고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고통은 이야기될 수 있는가?

그 개인의 고통을 타인은 진정, 공감할 수 있는가? 

가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으로써 묻는 때가 있다. 

그 공감의 불가능성 앞에서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할 때를 잠잠히 기다리고,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온 체중을 실어 들으며 함께 그녀들과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행'이라는 말이 그래서 좋다. 
'동행'이 현재, 그런 역할들을 하고 있음이 감사하다. 
동행과 계속 함께 묻고, 답을 구해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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