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 김용채 변호사님 인터뷰
2017-02-06      조회수 586







동행이 새 대표님으로 김용채 변호사님을 모셨습니다.

저희로서는 독수리 날개 위에 올라탄 것, 어미 닭 날개 아래 비를 피하는 병아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소탈하고 푸근한 웃음을 지으시면서도 옳은 것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으셨던 김용채 변호사님과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도 사람들한테 애송하는 시 한편을 남기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김용채 변호사님을 소개합니다.

 

 

> 왜 변호사가 되셨는지요?

 

> 그냥 뭐 공부 좀 잘 허고 사법 시험에 합격하면 훌륭한 줄 알고 그랬지요.

 

한미한 집안(한미한 것은 가난도 하고 힘이 없다는 뜻이에요)에서 부유하고 세력이 있는 집안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약간은 있지요

높은 사람들이 나쁜 일 하고.... 그래서 법률을 다루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들을 막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벌을 줄 수도 있고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거창한) 거보다는 그냥 맹목적으로 공부를 잘하다 보니까

관리가 되어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고 좋은 일도 하고 할 수 있으니까. 법대를 가야되것다 싶어서.

 

> 고향이 어디세요?


> 나주 동강면이에요, 나주군에서도 제일 구석진 곳이어요.

나주에 목이 있어서 목사골이라고 지금도 그럽니다. 광주보다도 더 컸었죠죠. 나주가 전주와 더불어 가장 큰 고을 중 하나였어요

나주 읍이 넓다고 해도 동강면은 60리 떨어진 시골이에요. 영산강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기차를 타려면 강을 건너야 해서 교통이 불편했지요

강을 건너서 학다리역이 있었거든. 강을 건너야만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입지가 어려웠어요

60년대 초에 비로소 버스가 한 대 들어왔고 그것도 내가 사는 데에서는 5리 정도 들어가는데였어요.

 

> 중고등학교를 어디에서 나오셨는데요?

 

답> 학다리 중학교를 나왔는데, 강을 건너서 한 십리정도 가는 곳에 있었어요. 나룻배로 건너서... 매일 가야 했는데 그것이 힘들었어요

더 곤란한 일은 하구둑이 막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밀물 썰물에 따라 밀려오고 나오고 할 때 유속이 달라지고 빨라져서 강을 건너기 힘들었거든.

24녀 중에 뒤에서 두 번째였는데, 위로 형님과 누나 두분,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는데 형님도 중학교까지만 가시고 나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갈 형편 못됐는데 내가 갈란다고 해가지고 해서 갔어요. 공부를 잘하니까(웃음).

 

고등학교는 제일고를 나왔어요.

학다리 고등학교가 상당히 좋은 학교여서 거기 출신도 훌륭하게 된 사람도 많다. 더 좋은데 가고 싶어서 시험 봤던 것인데 된 것이죠.

서중에서 바로 그대로 일고를 대부분 가기 때문에 다른 중학교 출신은 가기 어렵다. 그런데 운 좋게 합격을 했어요.

 

> 중고등학교 때 공부 말고 뭘 좋아하셨어요?

> 문학 같은 것,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글은 써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잘 안되대요

나는 권력을 잡는 것보다도 사람들한테 애송하는 시 한편을 남기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고등학교 때도 도서관에 있다가 선생님이 조회한다고 와서 계시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늦게 오는 일이 많았어요

일고 도서관에 책이 많았어요. 우리 나라 문학작품 전부보고 세계 문학도 봐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 

계속 책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나이가 오십 중반이 넘으니까 눈도 피곤하고, 책 읽는 공간만 있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혼란스럽더라고....

 

> 그 때 어떤 책이 가장 재미있었으셨어요?

 

> 삼국지가 재미있었지. 남자들은 재미있어 하는데

사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많이 다루고 특히 정치 중심으로 여러 가지 지혜나 책략 같은 것도 많고 인간관계를 보여 줄 수 있어서...

 

(>어떤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시는지?) 사람들이 유비를 덕만 많고 착하기만 하고 별로 그렇게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다고 하는데

나는 하여튼 덕이 있고 착한 사람이 좋다. 백성을 생각하고 아랫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점이 좋거든

한나라에 대한 신의를 지킨다고 하는 부분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조조는 계산을 많이 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그런 사람보다는... 칸트를 보면 제일 도덕적인 사람이 제일 선하고 참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요

실낙원의 별(김내성 작)’이라는 책도 신선했는데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교수가 여자 제자와 연애를 하는 내용이에요. 아주 현대적이고 발랄한 내용이죠.

 

> 서울대 법대의 다른 동기들보다 약간 연배가 높으신 것 같아요

 

> 학교를 아홉 살에 갔고, 대학도 2년 정도 늦게 갔어요. 시골에서 과외없이 혼자 공부하다보니까

그때는 일고에서도 선생님들이 개인 교습하는 것이 많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이 혼자 공부를 했거든.

나는 대학시험을 보던 첫해에는 영어문제가 나왔는데 나중에 시험 끝나고 보니 뒷장이 또 있더라고, 아예 못봐부렀지

두 번째는 시골에서 공부한다고 학원에나 갔으면 좋았을텐데 시골에 있으니 안되고(정보력 부족 때문에)

시골에 있으니까 농사도 짓고(형님이 군대를 가셔서), 벼도 베고, 거름 주고 하면서 지냈고, 농사 지으면서도 묘허게 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보내고. 그 다음해에는 우리 매형이 가뭄 때문에 농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진출했었는데 매형 집에서 학원을 몇 달간 다녀서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죠.

내 연수원 시절에 몸이 안좋았어요. 결핵. 공부를 못하고 당시에는 원하면 임관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못하고 바로 광주에 와서 개업을 했지요

 

 

>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셨는지, 혹은 그 시간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요


> 나는 극복을 할 수 있다면은 시행착오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신의 뜻에 따라서 결국 다 돌아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실패하고, 고난이 많이 오고 그만큼 얻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을 해요. 그 시간에 많이 생각하게 되고 용기도 생기지요

그 고난을 이겨내면 뭐든지 또 할 것 같은.

그런데 실패도 안해보고 제 때 순조 롭게 나간 사람들은 그것밖에 모르잖아요. 그것이 막혔을 때 나중에 어지할 줄을 모른다구요

사람 사는 것이 폭이 넓어야 하지 않을까요. 폭이 넓어져야 또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좋은 환경에서 나오고 하면 어려운 사람을 못 이해하지. 어렵게 자란 사람은 식사 먹는 것도 이것저것 아무거나 설렁탕 같이 돈 안드는 것도 사서 먹을 수 있고

옷 같은 것도 신경 안쓰고 살 수 있고, 소탈한 것이 얼마나 좋아요. 자유롭잖아요

그런데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면 비싼 것만 먹어야 하고 옷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자유롭지 않잖아요.

시골에 거름 냄새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냄새는 고약하고 더럽다고 하지만 그거야 말로 어떻게 보면 생명을 기르는 보물이라고 할까요.

고생을 했다는 것은 그러니까 굉장히 좋은 것을 자양분으로 섭취하고 있는 거에요. 늦은 사람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높이 먼저 가다가 추락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새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허허허허). 

바르고 소박하고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게 훌륭한 인생이지요.


>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 대학 다닐 때는 사회 문제에 참여도 하고 그랬어요

농촌법학회라는게 있어요. 농촌이 왜 가난하게 살고 뒤떨어지느냐, 농업경제를 공부하면서 법률 등으로 농민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부분을 토론을 하고 그랬죠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이학회를 들어라 저 학회를 들어라 하고 다닌다고. 농촌법학회 가서 리더도 하고 그랬지. 데모하고 그러면 앞장서서 하지는 못했고

법대가 제일 소극적일 것입니다. 그 앞에 조영래 변호사, 장기표씨, 이신범이라고 대학 다닐 때 지하 신문(자유의종)도 만들어서 등사하여 뿌리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 빼놓고는 전부 고시공부여.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이 법대는 별로 없어요. 고시를 봐야 하고 군대를 가야 하잖아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싶어서 당시 문리대 가면 중앙도서관(동숭동 시절)에 가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사회학 책도 읽고, 민족주의의전개과정(최문환)도 읽고.

재미있데. 서양의 몰락, 소유냐 삶이냐 하는 그런 책들을 읽었어요. 데모도 하고 할려면 뭘 알고해야 않것냐 싶어서 책을 읽었어.

근데 그것이 일생 태도에 너무 뒤떨어진 것이었던 것 같어.

그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한 다음에 행동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행동을 한 다음에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었고 

공부를 우선해서 자기 판단이 들면 실천을 하는 것이 지식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공부하는데는 끝이 없더라고.

 공부와 행동을 병행을 하던지, 아니면 행위를 하던 중에 깨달음이 있거든

머리 속으로 먼저 정리해놓고 여러 지식을 가지고 옳다 그르다 판단한 다음 행동을 결정 하면 늦고, 공부하는데도 끝이 없어서 시간을 다 빼앗겨요

행동을 허면은 자기가 행동하는 가운데에서 시행착오도 하고 부딪히면서 깨달음이 생기거든...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반대로 권하고 싶어. 어중간 허더라도.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는 사람들이 상당히 알거든.

그런다면은 과감하게 행동을 하는 것, 특히 악이나 권력, 자본과 싸울 때는 그런 자세도 중요할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철학에 보면 이성은 감정, 욕구 등을 통제하는 것이냐, 오히려 사람이 욕구가 먼저고 뒤치다꺼리를 이성이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성을 중시하는 대륙계는 전자고, 영미 쪽에서는 후자고.

 

> 전면에 안나셨다고 하기에는 경실련 대표도 하시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셨는데요


> 변호사 하면서는 점점 그쪽으로 영역이 넓혀지고, 생각도 깊어지기도 하고... 변화를 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실천을) 처음부터 해야죠환경이나 생각이나 독서, 경험을 통해서 중요한 것이 조금 생겼죠.

정치도 해보고 싶고, 바꾸어 봐야지, 세상에 대해서 자기 존재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같은 것, 사회운동을 통해서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다가 시민운동도 90년대초, 80년대 말 경실련을 하게 되었죠.

당직변호사 제도가 90년대 중반에 생겼는데 변호사들이 하려고 하지 않아. 사람들이 추대하여 그것을 내가 맡게 되었어요

경찰서 마다 쫓아다니면서 팜플렛을 만들어 홍보자료를 만들어 경찰서, 각 동, 구청, 시청, 역에도 붙이고 하니,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지요

그 전에는 변화들이 공익에 대한 적극적인 생각이 없었어요. 그 제도 초창기에는 시국 사건이 있고 해서 밤에도 가서 조사동행을 하고 그랬어요

국가보안법 사건들 당직변호사들이 가고 그랬거든. 그것을 한 4년간 하고 기초가 닦아졌지요.당직변호사회를 활발하게 한 것이 변호사회에 기여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정치권에서 제안도 받지 않으셨나요?


> 시민운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은 정치하고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어느 정파라든지 후보라든지 하고는 밀착되어서는 안된다고

세상은 항상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집단은 있기 어려운 법이니까, 시민운동은 품이 넓고 어느 한 곳에 메이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비판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중 어느 한 편과 가까워져서 비판을 못하게 되고 하면 거기는 끝나는 거다라고 생각해요

영구히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파와 당리를 떠나야죠. 어떤 지위를 차지하려고 혹은 무엇이 될라고 해서 어느 세력과 한몸이 되어서는 안돼

그 때는 자기가 비판하는 사람이 비판 당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공정한 비판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래서 나는 정당과는 멀리하려고 노력했어요. 각 당들의 말을 들어보려면 똑같이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시민운동은 아무래도 진보 성향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외로워. 시민운동 하는 사람은 정치를 가능한 한 안하는 것이 좋아요. 하려면은 깨끗이 시민운동판에서 발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폴리페서라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에 대해서 비판적이에요

학장이나 교수는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해서 사회에 기여해야지

그걸 가지고 정치를 한다거나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것은 아주 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민운동판에도 그런 사람 많아요. 정치에만 관심 있지 막상 현장에는 안가는 사람 많아요

현장에는 나가지 않으면서 그냥 이론이나 언론과만 친해서 띄워지기를 바라는 사람 있다니까. 그런 것은 경계를 해야죠. 나는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 마지막으로 동행에게 당부 말씀.


> 변호사들이 경제생활을 해가면서 자기 직업으로서도 생활을 하기도 힘들다핟라도, 변호사라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고루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사적영역에 빠져있는 것 같어. 권리는 마땅히 지켜져야 하고 보장되어야 하는 거, 마땅히 찾아먹어야 하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마땅히 찾아먹어야 할 것들을 누릴 수가 없는(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게 되지요.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이고 사실 개인 힘으로 하기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작은 사회를 만들어서 그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같이 하면서 그 사람들이 함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뜻잇고 해야 할 일인가.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갖춰져야 하고 사람이 필요한데(일할 사람), 무엇보다도 회원들, 후원들이 필요하죠.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재정이 이루어져 일을 할 수 있게끔 재정이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고 사회의 관심도 부족한 것 같아서(걱정이네). 어려움이 있죠. 그렇지만 이 일은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니 같이 참여를 해서 다 같이 특히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인간다운 삶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해주고 했으면 좋겠다.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