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변호사 이소아 인터뷰
2016-11-16      조회수 602

  • 1.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동행에서 실무수습 중인 전남대학교 로스쿨 7기 김민아입니다.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어떻게 공익 관련 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원래 처음에는 변호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법대를 졸업할 때 즈음, 부모님이 기대를 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그 때부터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제 성격을 잘 알아요. 계속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법대 4학년 2학기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1차를 3번 연속 낙방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험 준비를 계속 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했어요. 제 선택의 기준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일상을 살피면서 선택을 한다는 것이에요. 공부를 그만 두어야 하는 가의 기로에서 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현명한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후회 없이 공부를 했는가 하고 스스로 반문했을 때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후회 없이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 때 즈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어요.
    제 마음속에 항상 종교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좋은 일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합격 후, 수도원에서 휴정을 하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를 위해서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수원은 판·검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연수원에서는 주로 판결문을 작성하는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 배워요. 물론 그런 부분들도 중요해요. 하지만 저는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어요. 그러던 중, 학부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활동가 선배들을 만났고, 그분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연수원에서 ‘공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활동가이면서 변호사로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연수원 졸업 후에는 단체에서 상근변호사로 일하다가, 좋은 기회에 민변 여성인원위원회 위원장님을 통해서‘다시함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다시함께센터’는 성매매피해여성을 상담해주는 곳인데, 당시만해도 저는 성매매와 관련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성매매 문제는 성평등 부분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가장 최전선에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단체 간의 연대나 액팅이 굉장히 활발해요. 그곳에서 성폭력, 성매매, 그 외 인권문제 등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관련 단체들과 다양한 인맥을 쌓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그러던 중, 민변 본부에서 상근 변호사 제안이 들어왔어요. 운이 좋았어요. 돌이켜 보면 한 곳에서 정착하지 못 한 아쉬움도 있어요. 저에게 제안이 들어 온 이유는, 민변은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단체 내에서 직접 경험을 해 본 변호사를 원했어요. 보통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서면을 쓰는데 집중하고, 직원이 접수, 행정실무 등의 업무를 나눠서 해요. 그에 반해 민변은 재정, 회의 및 회의록 작성, 청소 등 모든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저에게 제안을 하셨던 거 같아요. 아쉽게도 2년 정도 일하다가 가족문제로 광주로 내려와야 했어요. 제가 또 남편에게는 순종적인 여자여서 호호호(수줍은 웃음)
다시‘왜 공익이었을까?’하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제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활동가와 변호사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라 가끔.... 혼란도 있고 힘들기도 하지만, 저는 변호사로 일을 할 때도 서면을 쓰는 것보다 증인신문을 하는 것이 훨씬 즐거워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재밌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즐겁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에요.

2. 동행과 같은 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민변에 있을 때 부터요. 민변에 있을 때 소수자인권위원회 담당이었는데,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6명이‘희망법’을 만드는 것을 보았어요. 또 42기 임자운 변호사가‘낭만펀드’를 조성해서 나오는 것을 봤어요. 내가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직접 만들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료변호사들이 기획력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것을 보고 광주에서 공감과 같은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변호사 되고 8년 만에 동행을 만들었네요. 마침 그 시기에 ‘공감’과‘공익법조모임 나우’에서 ‘신규 공익변호사자립지원사업 기금’신청을 받고 있었어요. 매년 년 초에 하는데, 그걸 보고 기획안을 내면서 경쟁률과 상관없이 제가 될 줄 알았어요(웃음). 저는 민변과 여러 단체에서 계속 기획안이나 회의록을 쓰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니까요. 다른 신입 변호사들이 쓰는 기획안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그리고 지역을 우선으로 배분한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에 저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건 아닌지 하는 무척 고민을 많이 하긴 했는데 어쨌든 지역에는 하나도 없는 와중에 신입변호사들이 시작하기는 어려우니 제가 먼저 시작하기로 했죠.

3. 광주 민변 지부가 있는데도 동행과 같은 단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에 내려올 때는 광주지부 민변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광주지부 상근변호사로 ‘저를 뽑으세요.’하고 제안할까도 생각했어요. 근데, 무엇보다 광주지부가 상근변호사를 채용할 만큼 재정적인 지원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민변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일도 많지만, 민변 본부 노동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노동문제의 경우, 큰 노조와 관련된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그에 반해, 비정규직, 경비노조 등과 같은 작은 노조와 관련된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어요. 민변에서 다루지 못하는 그러나 중요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어요. 이 외에도 장애인 성폭력, 여성폭력 문제와 관련하여 일터 괴롭힘, 성희롱 등 다루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광주 민변은 상근변호사가 없기 때문에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동행과 같은 단체가 꼭 필요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민변 회원이고 아주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4.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동행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만 다니고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기 때문에 광주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럼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광주의 현황을 알아 가면 되죠.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전화 한통으로 되는 건 아니고, 그럼에도 일단 미친 척 하고 전화를 해요. 리서치를 하면서 광주에 있는 여성 단체들을 알아보고 전화를 해서‘나중에 쓰임이 있으면 저를 적극 이용해주세요.’하고 저를 소개했어요. 그럼 바로 연락이 올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잊어버릴 즈음에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관계를 맺어야 해요. 이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민변 본부에서 회원팀 팀장을 해서 3년 전까지 민변 전 회원의 현황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민변 광주지부 변호사님들도 알았겠죠.그래서 민변 광주전남지부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어요. 광주지부 민변 변호사님들께 단체들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면서 연락처도 물어보고 그랬어요. 또 서울에서 알고 지냈던 인권단체의 인맥들이 광주까지도 이어져요. 성매매단체도 그렇고, 장애인권단체도 그렇구요. 그런 식으로 한두 번 만났던 인연이 쌓이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광주에 내려와서 잠시 1년 반 정도, 법무법인 해마루(현 법무법인 지음)에서 고용변호사로 일을 했었어요. 해마루에 계신 김정희 변호사님이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주셨어요. 정말 고맙죠. 해마루에서의 경험도 재밌고 좋았어요. 그래서 일을 할 때는 김정희 변호사님과 오래오래 키우면서 함께 하기로 했었어요. 그러던 중 임신을 하면서 출산휴직을 하게 되었어요. 복귀할 때 즈음, 사실 가장 많이 고민을 했어요. 이제 7년차가 되는 시점에서 복귀를 한다면 영업과 사업을 하는 변호사로써의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면 할 수 있지만, 이전의 나의 커리어들이 있는데, 또 그 일들이 재밌었고 잘했었고, 만약 다시 해마루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일들은 다시 못하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 선배변호사님들을 만나서 상담을 했었어요. 그때, 광주지부 민변 지부장이신 김상훈 변호사님께서 이 변호사가 공익변호사로써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면 승부수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전문 커리어로써 10년 후를 생각해보았을 때 단체의 공익전문변호사로써 보다 특화하여 하는 것이 어떠냐며 조언을 해주셨어요.‘그럼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구체적인 계획을 구상하던 중에, 페이스북에서‘신규 공익변호사자립지원사업’을 보고 하룻밤 사이에 기획안을 만들어서 제출했어요. 그때 서울에 있는 서성현 변호사님께도 조언을 구했었어요.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들었지만, 지금이 때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어서 용기를 내서 지원을 했어요.

5. 변호사님이 동행에서 하게 될 업무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크게 두 가지인데, 단체 운영과 송무에요. 두 가지 다 경중 없이 중요해요. 특히 단체 운영과 관련해서는 교육 사업기획, 홍보사업기획, 후원 등이 있고요. 저, 안현주 변호사님, 유은미 실장님, 10명의 운영위원분들과 모두 함께 하는 거에요.

6. 1년 반 정도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해마루와 동행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보통 변호사들은 당사자나 단체의 요구가 있어야 그 이후에 움직여요. 변호사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반면‘동행’에서는, 단체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의 논의 체계에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 분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수 여성사망사건의 경우, 광주여성변호사회에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서 여성분들 면담을 진행 했어요. 분명 이 활동도 의미가 있어요. 이후에 여수 여성사망사건을 지원하기 위해서 여성단체가 조직된 연대회의가 있었어요. 이 연대회의에서는 법률지원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등 다른 부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어요. 기자회견을 누가 , 어떤 순서로 발언을 할 것이며, 면담요청준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 전체적인 논의 체계에 전면적으로 결합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죠.

7.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활동가의 면모가 굉장히 강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이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이 힘들어요. 그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가끔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과 조금 더 함께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또 다른 점은 여러 가지 사업을 기획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교육 사업, 단체 인권활동가 역량교육 기획, 홍보기획 구상 등 이런 사업들을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재밌어요.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선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여수 여성사망사건의 경우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으로 피해자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어요. 현재 법의 언어 혹은 질서 내에서는 당사자의 말이 법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들의 말을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성폭력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저는 당사자가 아니고 전달자의 역할을 할 뿐인 거죠. 이 와중에 굉장히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변호사는 무언가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소송의 승패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이뤄내야 하는 사람이고요. 사실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활동가로서 저의 마인드와 변호사로서 마인드가 내면에서 엄청 싸우고 있어요. 활동가로서의 마인드는 항소심에 가서 모든 언론을 동원하여 기자회견을 하고, 단체들의 연명을 통해 문제점을 성토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의견서를 제시하고 절차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제가 만약 활동가로써 이 모든 것을 같이 하게 되면, 그럼 변호사로서 나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될까 걱정인거에요. 그럼 당사자의 말이 법원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힘을 잃게 될까봐 걱정이 되는 거에요.
바로 그 사이에서 거리를 둘 것 인가에 대해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성폭력 사건의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문제제기를 할 거에요. 물론 저는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 기본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더 기본에 두고 있어요. 그렇지만 성폭력 사안의 경우는 같은 여성으로서 사회 구조적인 편견에 의해 피해자들의 피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묻힌다거나 쉽게 ‘객체’가 되어버린다는 한계가 있고 이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느끼기에 계속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형사사건에서 아주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피해자는 증거방법에 불과하죠. 그런데 이 지점이 성폭력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구조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에요. 물론 다른 사건의 경우도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방법인 경우가 있죠. 그렇지만 피해자의 진술이‘유일한’ 증거방법인 경우는 없어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가 허다한데,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이유로 다 처벌하지 말아야 되는 건가요? 문제는 그‘합리적인 의심’이라는 부분들이 편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럼 어떻게 실체적인 진실을 가려낼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요

8. 그럼 변호사님은 언제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음... 부끄럽지만 저는 여성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요. 사실 저도 평범하게 법학과를 졸업한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고정관념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학교 때는‘성매매는 자발적으로 선택 한 것 아닌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여성이다보니 당사자로서 받아들이는 문제 의식이 자연스레 생겼고, 실무를 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추상적인 생각은 민변 여성위원회 활동을 통해 구체화되거나 해결되었죠.
‘다시함께센터’에서 처음에 무죄취지의 의견서를 써야 했던 때가 생각 나네요.‘어, 그래도 이건 유죄인정해야 되는 거 같은데..(우리 법에 의하면 너무나 명백히 유죄니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나 단체의 지향에 반하는 의견서를 쓸 수는 없지요. 그러면서 공부를 많이 하고 당사자들 이야기도 많이 살펴봤어요.
당사자를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은 자발적이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이 여성들이 처해있는 권력관계에는 평등한 관계가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인권침해 상황을 겪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장기매매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장기매매의 경우, 사고파는 사람, 알선자, 브로커 등이 있어요.
누구도 장기매매는 스스로 선택했으니까 처벌하지 말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 이유는 장기를 매매할 정도의 취약한 지위에 있다고 한다면 쉽게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이건 성매매도 마찬가지에요. 더 심각한 것은, 성매매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침해가 발생하게 되는 구조라는 거에요. 그 과정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도구로 쓰게 되고요.
저는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쓰는 모든 것에 반대해요. 폭행, 협박이 없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협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복적으로 인권침해 상황을 겪었던 여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자존감이 낮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가 고갈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재판부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어, 법정기일에 오지 않는다거나...) 그러나 언니들은 버스 타고 목적지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해요.

9. 그 동안 많은 사건을 다루셨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다시함께센터’에서 제일 처음 지원했던 사건이 생각이 나네요. 초반에‘다시함께센터’에 들어가서도 저는 성매매가 유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죄 취지의 서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점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어요. 결국 기소유예가 나왔지만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지금 지원하고 있는 사건들이죠. 월요일에 무죄가 나왔던 성폭력 사건, 세월호 진도경찰관 사건, 여수 여성사망 사건이 생각나네요.

-다 기억에 남는다고 하시네요.

당사자에게는 평생에 있어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들이니까요.

변호사님이 단어 선택하시는 거 들어보면 변호사 본인의 입장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시는 거 같아요.

그건 많은 변호사님들이 똑같을 거에요. 사건을 승소하더라도 뿌듯한 것이 아니고 다행인거죠.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 진 것이 내 공이 되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이건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세요.

11. 앞으로 동행에서 수임하게 될 사건에 어떤 자세로 임하실건가요?

함께 있는 것이죠. 잘 듣고,
제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말을 잘 듣고 법적으로 유효하게 쓰일 수 있는 언어로 잘 정리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문구들은 저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대학에서‘서울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동아리를 통해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새끼 손가락 하나만 겨우 얹고 있었는데도 선배들이 저를 기억해주어서 고마웠었어요. 그래서 그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 91학번 엄기호 선배가‘동행’개소식에 오셔서 동행에게 바라는 점이라며 해주신 말씀이었어요.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데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법적으로 유효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논리 정연한 법의 언어에 당사자의 언어를 던지는 거에요. 기존의 법률체계에서 소외되는 인권 문제는 보호 받지 못 하거든요. 그래서“그들의 말을 유효한 의미가 되게 던지는 역할을 동행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신 거죠.
그리고 리플렛에‘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당사자 곁에서 혹은 뒤에서 함께 하겠다.’라는 문구가 있어요. 이 문구는『대한민국 치킨전』을 쓴 정은정 선배가 지어줬어요.
‘동행’이라는 이름도 제가 지은 것이 아니에요. 여러 단체 소장님과 활동가 분들이‘변호사님! 함께 있으니 너무 좋아요 이렇게 오래 가시게요.’라고 하시는 말들을 해주셨는데요 이를 전해들은 제 쌍둥이 언니가 “이름을 ‘동행’으로 하면 되겠네!”해서 짓게 되었어요. 결국 이런 모든 일들이 함께 하는 것이고 절대 저 혼자 할 수도 없고 혼자 해서도 안되는 일들이에요..

12. “앞으로 광주에서 동행이 어떤 역할을 해나갔으면 좋겠다.”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동행’의 역할에 대한 거창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법이라는 언어를 배운 똑똑한 도구로 함께 있다가 기회가 되면 중요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함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함께 더 가까이 있으면 더 긴밀하고....당사자가 하는 말의 의미도 더 잘 알 수 있고... 아무튼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좋고 편해요.

13. 변호사님 삶의 모토는?

무조건 행복하게 살 거에요. 인생 한번이거든요. 저는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그럼 어떤 변호사이고 싶으세요?

전문적이었으면 좋겠죠. 하하하(웃음) 변호사로써 저는 제가 하는 말이 논리적으로 항상 상대방에게 어필됐으면 좋겠어요.

-변호사가 되면 어느 정도 말에 힘이 생기지 않나요?

변호사라는 자격만으로 말의 힘이 당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나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말에 힘이 있으려면 계속 공부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저는 책을 통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요. 네트워킹을 통해 그 일을 잘하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공부하며 배우고 있어요. 무언가를 잘 안다는 것은 논리적인 이해를 말할 수도 있지만 , 무엇보다 정확히 알고 전달하기 위한 모든 것은 당사자로부터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전면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 활동가이면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에요. 모든 힘은 당사자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없어요. 우리는 똑똑한 손발 역할을 하는 것 뿐 이죠.

-지금까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변호사님은 본인보다는 남을 위해 살고 계신 거 같아요. 그게 가능한가요?

저는 오로지 결국 나를 위해 일하는 거에요.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이 일을 하면 재미있고 나 스스로가 살아 있는 것이 느껴져요. 인간 이소아와 변호사 이소아는 연결되어 있어요. 인생은 한번이라고 했잖아요. 무조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14. 동행과 같은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려는 후배 공익변호사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으신가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고 해야지!’ 하는 순간은 오지 않아요. 사실 주변에서 공익 변호사 자리가 없다고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 사람들에게 알아봤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알아봐서 정말 자리가 없다면 그럼 만들어 볼 생각은 했냐는 거에요. 혼자 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함께 할 방법을 생각하면 되죠. 또 어떻게 하나 모르겠으면 물어보면 되죠. 저는 정말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일단 시도를 계속 해보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공익변호사로 활동한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해요. 단체가 운영되기 위해서 필요한 디테일한 부분들을 모두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설령 자리가 생겨서 들어가더라도 단체와 함께 고민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돼요. 변호사라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서 떨어지는 감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됩니다.

15. 앞으로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복지 문제 중 장애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장애인 인권 관련해서 관련 법률 등 여러 가지 메카니즘이 마련되어 있지만, 특히 사회권적 기본권과 관련된 복지서비스 부분은 여전히 미흡해요. 우리나라는 복지가 은혜적으로 베푼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매뉴얼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복지혜택의 적용 대상자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사회복지서비스의 경우, 시행규칙에서 정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분성을 이유로 헌법 소송이 인정되지 않고 있고요. 전체적으로 소송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고요. 그래서 사회보장법학회를 통해 계속 공부를 하고 있고, 현장접촉을 위해 장애단체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