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변호사 마지막 인사 - '동행'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2022-06-02      조회수 415
김민아 변호사 마지막 인사
'동행'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동행 전 상근변호사 미냐입니다.

떠다니는 감정을 꾹꾹 담으려는 욕심에 마무리 인사가 늦어졌습니다. 서투른 감정이 느껴질까 걱정도 되지만 3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스치고도 여전히 남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려고 합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동행의 첫 출근은 2019. 5. 12. 일요일 오후 2시 평동역 이주민법률상담. #첫출근 #일요일 #법률상담 #평동역 #나는누구 #여긴어디. 3년 전의 기대감과 긴장감은 잊었다가도 언제나 익숙하게 떠오릅니다. 비영리단체 상근변호사로 하는 모든 활동이 새로웠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기도 했습니다. 활동을 마무리 할 때 즈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 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혼자 있던 어느날, 사무실로 전화가 온 적이 있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 확신이 없는 질문들 사이 긴 정적. 준강간 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다음날 당사자는 자해를 하고 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몇 차례의 상담과 해바라기 센터 조사 동행. 하지만 결과는 혐의없음’.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상태를 변호인이 입증하지 못함.통지서를 확인하며 무기력함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피해자의 모든 일상이 중단되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사자와 한동안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순이(가명)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순이:다들 아니라고 하는데..그렇게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매년 말에 오던 연락이 더 이상 오지 않지만, 충분히 넉넉한 일상의 흐름에 있기를 바랍니다.분명 우리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고, 더 이상 위로가 될 무언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라도 옆에서 힘이 되고 싶다, 될 수 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찾던 무엇의 시작이었을 테지만 그 땐 몰랐던 거 같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따뜻해서 그런 겁니다.


점점 업무가 익숙해지고, 활동에 자신감도 조금씩 생겨 갔습니다. 고된 일정 가운데 동료들과 즐겁게 웃고 격하게 울며 함께 한 순간들도 기억납니다. 고소인이 15명이던 개야도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사건은 상근변호사 4명이 노동청 조사 일정을 번갈아 출석했습니다. 조사일정이 겹칠 때는 무사히 잘 하고 오라고 응원하며 일정이 끝날 때까지 차에서 기다렸습니다. 긴 조사 동행 후에는 간단한(?) 음주와 함께 녹초가 되어 하루를 마무리 했던 넝마의 기억도 있습니다. 솟구치는 열정으로 난민불인정결정취소소송에서 입증서류를 갑제50호증까지 제출하고, 다행히 당사자들은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활동하면서 따뜻함에(주관적이긴 한) 눈물을 흘렸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성매매피해여성의 사기건 최후진술 중 울먹인 탓에 꼬여가는 온몸을 추스르고 겨우 진술을 마무리 하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일에서는 신청인의 최후진술을 들으며 정신없이 주르륵 콧물을 흘리고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법원의, 헌법재판소의 보이지 않는 벽에 들려지고 울리고 부딪혀 깨지는 순간은, 그 어떤 서면에 담긴 언어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유투브 라이브로 진행된 동행 정기총회에서는 긴장한 탓에 돌멩이도 되었다가, 바보의 나눔 사각지대이주민사업으로 차분하게 농어업이주노동자권리찾기영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동행의 상근변호사로 활동하면 할수록 무게감은 커져갔고, 뭐라도 혼자서 거뜬히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도 느꼈던 거 같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상근변호사로 법률 영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활동방식을 고민하고 다양한 주제의 시민단체들과 긴밀하게, 긴 호흡으로 연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단단한 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글을 쓰는 지금도 동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잠시 멀어진다는 점이 제일 아쉽습니다. 3년 동안 활동하는 길목에서 잠시라도 스쳤던 모든 사람들이 따뜻했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흐릿하고 희미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 희미한 조각을 하나 쥐었을 때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많지 않아서 절실하고 그래서 더 든든하게 여겨주는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 단단해져서 거리에서 책상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것입니다. 단단한 곳에 함께 서서야 다음이 있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동행에 들어오기 전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닿았던 그 곳에서부터 반대로 걷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작심하며 걸었던 마음을, 이번에는 놓았다 쥐었다 하며 남겨지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오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온 길을 뒤돌아보니 서투른 길들이 뒤로 늘어서 있는 거 같습니다. 이 중턱만틈의 동행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구성원이 합류한 동행 많이 응원해주시고 관심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긴 호흡을 만들어 주고, 힘이 되어준 동료들과 후원회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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