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전하고 싶었던 차별과 혐오 문제-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거울
2019-03-07      조회수 33

참고 : 아래 글은 ‘오늘, 인권을 그리다’ 광주 전시회 첫날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의 전시기획 배경과 관련한 소개를 녹취록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중간의 괄호 부분은 설명을 위해 옮긴 이가 첨가하거나 지문형식으로 넣은 것이며 글 읽기의 편의를 위해 문체를 약간 변경하였습니다.

강연 : 류은숙    (옮긴이 : 이소아)
그림 : '관계의 숲을 밝히다', 이선일, 2018

광주에는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저의 학창시절에 오월이 오면 망월동 묘역 참배할 때만 왔었습니다. 
그런데 인권과 관련된 기획으로(이 전시 기획으로) 광주에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그 역사라는 것이 잔인한 것이, 역사는 어떤 사실의 박제화를 거부한다는 것이죠.
광주 시민들이기에 더 잘 아시겠지만, 수 십 년 동안 숱한 사람들이 광주 학살 5·18 진상규명을 위해 몸을 불사르고 했음에도, 
그것이(5·18 희생자들이 겪은 인권침해, 민주화운동이라는 점...) 사실이 되지 않고 
오히려 온갖 난동(거짓 선동과 혐오의 대상으로 바뀌어버린)에 처해버린 지금의 현실을 보면 역사는 박제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역사가 박제화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진상규명’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
 ‘진상’이라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의 진상을 밝히는 것인데, 우리가 밝혀야 할 것은 단지 그런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있었던 진실’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진실규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들(혐오세력, 가짜뉴스 생산자들)이 하려고 하는 박제화를 거부를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박제화하려는 것(그 사실과 나와의 관계를 살피지 않고 그냥 과거의 사실로만 놔두는)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상규명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우리와의 연루성, 관계성을 밝히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진실규명이다’라는 생각을 광주에 오면서 해봤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이 전시의 큰 주제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것이에요.
 저희(인권연구소 창)가 인권단체다보니까 차별 반대를 계속 외쳐왔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 차별과 관련한 가장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기가 막합니다.
  김대중 정권의 100대 공약사항 중에 ‘인권법 제정, 국가인권위 설치’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법이 아니에요. 위원회 기구 설치와 관련한 법이지요.인권법에 해당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에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7년에 (인권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발의 되었어요.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 되었어요. 그 이유는 혐오세력의 반대 때문인데요. 그 세력은 지금 5.18에 대해 망언을 서슴지 않는 그 세력과 딱 겹쳐요.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의 통과를 끈질기게 막아왔기 때문에, 고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이를 이어 받은 노무현 정권에서 발의된 법인데, 그렇게 오랜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차별금지법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좋아진 것도 많지만, 여러 가지로 나빠진 것 중 대표적인 것이 혐오입니다. 
‘타인’을 미워하는 데, 타인 중에서도 나보다 약자이고 처지가 더 힘들며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사람을 ‘골라서’ ‘미워합니다’.
그런 약자가 나보다 위계에서 밑에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얻는 것, 그게 혐오에요. 
미워할만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정당한 분노라고 하잖아요. 정당하게 분노할만한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만만한 사람을 골라서 미워하고 괴롭히려는 것이 혐오에요.

  혹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 읽어보셨나요? 지금 이 책이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어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어요.
저자인 김지영 작가가 각국 현지에서 독자와의 대화를 한 후일담을 들어보면, 
다른 국가의 여성들도 그 소설 내용을 대체로 공감하는데 도무지 이해 못하는 단어가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뭘까요?
(객석에서 대답 : 맘충?!)
네. 맞아요. 그 소설에 나오는 단어가 맘충이에요. 회사를 다니다가 아이를 출산한 주인공이 아이 데리고 공원 벤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있으면 ‘맘충’이라고 한 대요. 
전 세계 어디에 엄마한테 벌레 ‘충’자 붙이는 나라가 있겠어요? 
그거 말고도 많잖아요. (입에 담기 뭐하지만) 지역에서 오면 지방충, 노인들에 대해 틀딱충, 저처럼 사회정의에 대해 이야기 하려들면 선비충, 설명충, 
충, 충, 충... 온갖 ‘충’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지금 대한민국이에요.

 저희가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인권 연구하고 데모하고 하는 것만으로는 (혐오 문제 해결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적 기반이라는 것이 엄청 중요한데, 
그런 ‘충’자를 맨날 인터넷과 SNS에서 '충충충충' 거리며 대화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권 관련한 법이나 제도에 공감을 하고,
(그 법제도를) 찬성하는 정치적 책임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은거죠. 그래서 그런 문화적인 부분에 굉장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국가폭력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큰 잘못을 한 것이 분명히 맞습니다. 국가폭력 직접 행위자들은 수괴부터 해서 급에 따라 책임이 나뉘겠지요. 
하지만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이 그 잘못을 눈감아준 것, 묵인해준 것. 그 책임에서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지요. 
그런 문화적 용납, 문화적 침묵이 그런 폭력들을 언제든지 재생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고민을 저희가 계속 갖고 있다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중에서 화가가 있으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자고 한거에요. 
화가가 먼저 간단한 구상(이걸 에스키스라고 한다고 해요)을 해오면
그것을 가지고 전체 연구소 활동가들이 주말마다 모여서 하루종일 토론을 해서 그걸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화가의 에스키스가 그대로 간 것도 있지만 그림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 것이 있어요. 

 이 그림들은 차별과 혐오를 바라보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이 전시회가 일종의 거울이에요. 
거울을 보는 나를 뒤에서 바라보는 거죠. 
내가 혐오의 눈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타인을 바라보는 나를 뒤에서 바라보는 것을 보는 거에요. 
그러면 내가 모르는 내 뒷모습이 보이죠. 내가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런 거울효과를 노리고 이 전시회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런 구상과 기획과정을 통해서 작년 연말에 전시회를 하게 되었는데, 이 전시는 아직 미완이에요. 
화가는 그림을 더 그리기로 했고, 연구활동가들은 그 그림에 맞는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림과 글이 다 완성되면 시화집을 내기로 했어요. (그때도 많은 관심을)

 그림은 언제까지나 본인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봐주시길 바래요. (자세한 그림 설명은 나중에 시화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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