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회원 인터뷰 #1. 김정희 변호사(법무법인 지음)
2018-04-16      조회수 107

올봄부터 동행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함께 걸어가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그동안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법무법인 지음의 김정희 변호사님입니다. 김 변호사님은 동행이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후원회원으로 함께 해오셨고, 지금도 묵묵히 곁에서 동행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친구입니다. 봄이라기보다는 때 이른 초여름 같던 4월의 어느 오후, 지산동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김정희 변호사님, 대부분의 동행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김정희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정희 변호사입니다. 특별하게 이력이라고 할 건 없고, 제가 요즘 좋아하고 있는 것은 지식재산권에 관심이 많고요, 농업법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농민들하고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되어볼까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광 원전 관련해서 대응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 제 이력이고요. 특별할 건 없는 거 같네요(웃음).


법무법인 지음 홈페이지에 방문해보니, 변호사님이 변리사이자 세무사이시던데요.


변리사나 세무사 자격증을 받은 것은 변호사 자격증을 따서 연수를 받으면 등록을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고, 최근에 특허법 관련해서 최근 학위를 받아서 그쪽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최근 박사학위를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어떤 내용으로 학위를 받으셨나요?


특허법에 특허요건이 있습니다. 신규성, 진보성, 산업상 이용가능성인데요. 요건 관련된 규정들이 일본법을 그대로 보고 베낀 것인데 유럽이나 미국법보다 뒤처지고, 인터넷과 생명공학 관련하여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특허 요건 개선방안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저작권이나 지적 재산권에 관심을 두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실은 저는 특허보다는 저작권에 더 관심이 있었고, 저작권 공부는 새로운 영역이어서 재밌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특별하게 관심을 두진 않았는데 평소에 안 하던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송무 말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하던 차에 지도교수님을 만나 그 부분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무등산 조망권, 새마을 장학금 조례 등 지역의 현안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내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송무에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시는 것도 호기심에서 기반을 둔 것일까요?


호기심도 있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지역 일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민변과 참여자치21에 몸담으면서 이러저러한 지역 이슈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광주, 전남지역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집니다. 변호사님이 그리시는 광주, 전남지역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인가요?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지역이 잘 되려면 전남이 잘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광주만의 특별한 에너지, 역량, 문화적 유산 등은 광주만의 산업적 기초 때문만에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광주에 도청이 생기면서 전남의 문화유산들이 자연스레 광주로 유입된 것입니다. 광주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전남에서 살다가 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이죠. 이건 결국 전남이 잘 되어서 문화적 다양이 발현되고 삶이 탄탄해지면 그러한 삶의 풍부함이 광주로 유입될 것입니다. 5.18의 흐름도 전남에서의 전통들이 광주에 모여서 발현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남의 농촌사회가 잘 돼서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국 제가 그리는 우리 지역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광주를 부산과 같은 메가시티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광주를 깡통 도시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죠. 결국, 광주는 지식 등을 많이 발전시켜 전남으로 퍼뜨리고 전남은 농촌의 삶을 기반으로 한 사람이 살만한 땅을 보존함으로써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농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농업이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 발전의 근간이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죠.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이 농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변호사님이 생각하시는 문제의식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실은 저는 촌놈입니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데요. 고향에 가서 느꼈던 것이 문제의식의 시작입니다. 일단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죠. 고향에 가봐도 50대 1분, 나머지는 다 80대이시니까요. 농촌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는 것, 수 천 년 동안 사람이 살았을 텐데 왜 갑자기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 하는 것이 제 문제의식의 시작이죠.


민변과 참여자치21 등 공익 활동을 많이 하셨잖아요.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저희 때는 변호사 되면 민변은 그냥 들어가는 건 줄 알았어요(웃음). 선배들이 들어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제 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2년 차에 사무차장직도 맡게 되었고요. 저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게 실은 박원순 변호사를 보면서 저 사람처럼 살면 좋겠다 싶어서 하게 된 것이거든요. 일종의 롤모델이죠.


박원순 변호사의 당시 어떤 모습에 감명을 받아 롤모델로 삼게 되신 건가요?


변호사로서의 가장 풍부한 삶을 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여러 양상이 있잖아요. 개인적인 삶도 있고, 가족도 있고, 사회적인 역할도 있고. 변호사로서 직업적 전문성도 있고요.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하시면서 혼신을 다해 사회적 역할을 사시는 것을 보고 저렇게 살면 참 풍부한 인생이겠다 싶었습니다.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국가보안법 연구 등 많은 일을 하셨죠.


농업법 관련해서 말씀하실 때도 그렇고,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그렇고 “풍성함” 혹은 “풍부한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웃음). 저도 모르게 그런 게 있나 봐요.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어울려서 사는 것이 풍성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서로 다른 것이 각기 모여 편중되지 않고 다원주의적인.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카톡 프로필에 “오늘부터 나답게 살겠어!”라고 적어두셨어요. 나는 앞으로 이런 변호사가, 이런 사람이 되겠다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그건 실은, 오지랖을 떠는 내 삶의 반성적 고려가 담긴 메시지입니다. 내가 하고 싶다는 것보다는 내가 해야 한다는 당위, 나로부터 시작한 동기보다는 타인의 요구 때문에 움직이다 보니 내가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하든 나의 내적인,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적어둔 메시지입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나요?


일단은 특별히 풀지 않고 돌아서서 잊어버리기 잘합니다.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감정적으로도 많이 잘 잊는 편이라서요. 저는 일하는 거 원래 별로 안 좋아하고 혼자 노는 것도 잘해요. 혼자 여행도 가고 술도 잘 먹고요. 산도 좋아합니다.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의 손해배상소송 기사가 많습니다. 근로정신대에 대해 변호사님이 갖고 계신 문제의식과 그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문제를 찾아내서 발굴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굴러다니다 보니 어쩌다 그곳에 박힌 것 같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에서 패소하고 무력감에 빠져 계셨을 때 광주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이를 국내에서 진행해보자 논의했습니다. 당시 광주시청 앞에 있던 미쓰비시 매장을 철수하는 1인 시위라도 하자고 해서 광주 민변 등 시민사회에서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에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 할아버지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할아버지들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와 민변에서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소송을 진행해보자고 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제가 가장 앞에 서서 일을 하게 된 것이죠. 
문제의식이라면, 이 문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때 당시 딸을 두었던 조선의 엄마, 아빠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수 없으니 딸을 내어주고, 딸들은 착취를 당하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또 험난한 삶을 살고. 이건 비단 할머니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죠.


동행의 후원회원이시죠. 어떻게 동행을 알고 후원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이소아 변호사 연수원동기입니다. 그 후로 개인적인 인연을 이어가다가 이소아 변호사가 광주로 내려오면서 동료변호사로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죠. 이소아 변호사가 계속 우리 사무실에 있었다면 좋았겠지만(웃음), 원래 따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동행이 시작할 때부터 다 지켜보고 지원하게 된 것이죠.


동행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동행은 광주 변호사사회와 시민사회에 없던 것을 만들어준 이정표입니다. 동행은 존재 자체가 귀하니까 그대로 잘 있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동행의 이소아, 권소연 변호사가 계속 잘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것이죠. 그래서 동행이 지속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변호사 님께 동행이란?


저에게 동행이란 아무래도 이소아 변호사가 가장 떠오르니까. “친구였고 앞으로 친구일”.


공익 활동을 시작한 저를 비롯한 후배변호사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너무 잘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대단한 결심 하셨습니다. 선배변호사로서 말씀을 드리면, 공익활동을 선택했으니까 나의 삶을 모두 공익으로만 밀어붙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더 편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해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인 삶, 사적인 활동도 중요거든요. 지칠 때 의지할 곳이 필요니까요. 지치지 않고 균형 있게 가려면 개인적인 삶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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